사적 제198호로 지정된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위치한 서오릉(西五陵)은 구리시의 동구릉(東九陵) 다음가는 조선왕실의 왕릉군(王陵群)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람이 빈번한 곳입니다. 서오능의 능역(陵域) 조성(造成)이 처음 이루어진 것은 조선조(朝鮮朝) 세조(世祖) 3년[1457년]입니다. 당시 세조의 세자(世子)였던 원자(元子) 장(璋) 후에 원자의 아들인 9대 임금 성종(成宗)때 추존(追尊)되어 덕종(德宗)이 됨이 요절(夭折)하자 여러 길지(吉地)를 물색하다가 이 곳이 풍수지리적(風水地理的)으로 적격인 산수(山水)의 안정적 길지(吉地)로 추천되어 부왕(父王)인 세조가 직접 답사한 후 세자묘(世子墓)추존 후에 묘호(廟號)를 경릉(敬陵)으로 추숭(追崇)하고 덕종의 비 소혜왕후 한씨(昭惠王后 韓氏)도 연산군(燕山君) 10년에 동원이강(同原異岡)의 형식으로 경릉에 함께 조성함]로 결정되었습니다. 그 뒤에 덕종(德宗)의 동생이었던 조선조 8대 예종(睿宗)의 능원(陵園)으로이 1470년에 조성 예종의 계비(繼妃) 안순왕후 한씨(安順王后韓氏)도 연산군 4년에 동원이강의 형식으로 창릉에 조성됨 되었고, 또한 1680년[숙종 6년]에 20대 숙종(肅宗)의 비(妃)인 인경왕후 김씨(仁敬王后金氏)의 익릉(翼陵)에 이어 숙종과 계비(繼妃)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閔氏), 인원왕후 김씨(仁元王后金氏)를 모신 명릉(明陵) 인현왕후릉(1701년)과 숙종릉(1720년)은 쌍릉(雙陵) 형식, 인원왕후릉(1757)은 단릉(單陵) 형식이 조성되었으며, 마지막으로 1757년에 영조(英祖)의 비(妃) 정성왕후 서씨(貞聖王后徐氏)의 홍릉(弘陵)이 조성되어 서오릉(西五陵)의 명칭을 사용하게 됩니다.
또한 서오릉에는 왕릉(王陵)뿐만 아니라 원(園)과 묘(墓)도 다수 있는데, 명종(明宗)의 장자(長子)인 순회세자(順懷世子)를 모신 순창원(順昌園)과 일제시대 때 숙종의 후궁(後宮)인 장희빈(張禧嬪)의 대빈묘(大嬪墓)도 옮겨져 경내(境內)에 조성되었습니다.
서오릉의 내역 [이동] |
- 경릉(敬陵) - 추존 덕종과 소혜왕후 한씨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 창릉(昌陵) - 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한씨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 익릉(翼陵) - 숙종(19대)의 비 인경왕후 김씨 [단릉(單陵)]
- 명릉(明陵) - 19대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민씨, 제2계비 인원왕후 김씨 [쌍릉(雙陵)]
- 홍릉(弘陵) - 영조(21대)의 비 정성왕후 서씨 [단릉(單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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