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옛사진

한국동란 - 우리의 自畵像

신우림 2011. 7. 8. 16:10

 

한국동란 - 우리의 自畵像

 

아프고도 소중한 기억들
육.이오 한국동란이 발발한지 어언 59년-두번다시 기억하기도 싫지만,
여기에 실린 사진들은  불과 반세기 전 우리의 自畵像이었다.

지긋지긋한 가난과 피비린내는 살육의 현장들이
그 때는, 그리 대수로운 일도 아니었다.

이러한 처참한 몰골로 야생초처럼
끈질게 견뎌온 모진 생명들...

불과 반세기가 흐른 지금,
우리는 너무 빨리 이 아프고도 소중한
기억들을 까맣게 망각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은지?

아래 사진들은 알바니아 태생으로
1,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한국전쟁을 취재한 미국의 저명한 사진가
디미트리 보리아 (1902~1990)가
駐日 美극동사령부 사진반에서 일할 때
한반도 각지를 돌며 촬영한 것이다.

 

전쟁의 悽慘한 현실

전쟁은 체면이나 양심, 도덕률.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곳에 현실로 존재한다.


유치원에 다녀야 할 나이의 어린이가
깡통을 들고 거리에나가  낯선 얼굴들에게 손바닥을 벌려야 했다.

 

전쟁 속의 생존.
나무뿌리라도 먹어야 산다. 

그리고 잡초보다 모질게 살아남아야 했다.

아이를 업은 소녀의 손에 쥐어진 나무뿌리는  가족의 한 끼 식사일까, 아니면 땔감일까 ?

 

골목길 해바라기.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어린 형제가
골목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이렇게 살아 남은 소년소녀들이... .
전란통에 용케도 살아남은 이 소년 소녀들은
시민혁명과 쿠데타, 
군사독재와 경제기적의 한복판을
 

질풍노도처럼 관통하여
"의지의 한국인"을 세계에 알리는 주역이 되었다.

 


어린 소년의 눈물
부모님은 피난 통에 돌아가시고,


살던 집은 폭격으로 다 부서져폐허가 된 터에
어린 소년이 버려진 채 눈물을 훔치고 있다.
고난의 1950년대를 몸으로 때우며 살아온 이 민족의 처절한 단면이다.

 
초롱초롱한 눈매의 자매들
찬 이슬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면 헛간이라도 좋았다.
행색은 초라해도 카메라를 강하게 의식하는
이 초롱초롱한 눈매의 자매들은 지금쯤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

 
 
개털모자 쓴 유년시절의 자화상
개털모자에 항공모함 같은 헝겊 군화,  곳곳을 기운 이 복장이
1950년대 유년시절을 보냈던 대부분 한국인의 자화상이었다
 
 
솜바지의 추억..

추위만 이길 수 있다면
누더기가 다 된 솜바지라도 좋다.
 
 
판자집과 피난민들 판자로 얼기설기 엮어 지은 2층 건물 곳곳에
피난민이 바글대고 있다.
고함 한번 치면 풀썩 주저앉을 듯 위태로운 건물 모습이
위기에 처한 조국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하다.
 
 엄동설한의 땔감
엄동설한 추위를 피하기 위한 땔감도 
넉넉지 못했던 시대에
두 소년이 끌고 가는 수레에는
한 식구의 온기를 담보하는 행복이 실려있는 듯하다.
 
 
마군복의 향수
태평양을 건너온 미군복을 얻어 입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간혹 마음씨 좋은 미군 아저씨를 만나면 미국으로 입양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연을 들고 포즈를 취한 소년들  전쟁의 傷痕(상흔)을 잠시 잊은 듯 하다.
 
 
탈진한 아이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한 아이가 탈진 했는지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마치 요즘 북한 장마당의 꽃제비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목욕하는 소년  미군 병사가 한 소년을 목욕 시키고 있다.
소년은 카메라를 들이대자
잔뜩 겁을 먹었는지 얼굴 표정이 굳어 있다.
 
전장의 노인과 소년  노인이 문 긴 담배대를 고개를 외로 꺽고 바라보는 소년과,
소년이 손에 쥔 깡통 속을 바라보는 노인.
전쟁은 노인의 빈 담배대와 소년의 빈 깡통 속에 있었다.
 
 
할아버지와 손녀  봇짐을 등에 진 할아버지와 망태기를 손에 든 손녀.
 
피난 가는 일가족  피난을 가는 일가족의 전형적인 모습.
이렇게 지게에 가재도구를 싣고 수백리 길을 걸어서 피난을  떠나야 했다.
 
 
전쟁 속의 생활
길가에 앉아 참외 등을 팔고 있는 아낙들.
 
 
지게꾼의 모습
젊은이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래야
날품팔이가 고작이었던 시절.
한 지게꾼이 피로에 지친 모습으로 길가에서 잠들어 있다.
 
 
담요를 쓴 어린이  황량한 벌판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어린이.
담요 한 장으로 매서운 추위를 견더낼 수 있을까 ?
 
거제도 포로 수용소 - 1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똥통을 운반하고 있는 공산군 포로들.
 
 
거제도 포로 수용소 - 2
인민군 포로들의 숙소. 난민 캠프를 연상케 한다.
 
거제도 포로 수용소 - 3
수용소에서 공산군 포로들이 한가롭게 목욕을 하고 있다.
피가 튀고 뼈가 조각 나는 포연 자욱한 전장은  이들에겐 일장춘몽이었을까 ?
 
거제도 포로 수용소 - 4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취사장.
흡사 후진국의 제철 공장을 연상케 한다.
수만 명의 포로를 먹이는 것도 간단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거제도 포로 수용소 - 5
무장 경비병에 둘러싸인 채 
뭔가 지시사항을 듣고 있는 인민군 포로들.
 
거제도 포로 수용소 - 6
거제도 포로수용소 경비병이 인민군 포로들로부터 입수한
철조망을 뜯어 만든 사제 무기와 도끼, 칼 등을 들고 있다.
 
거제도 포로 수용소 - 7
태극기를 들고 공산당 격퇴를 환영하는 마을 주민들.
참혹한 전쟁의 잔재들 :
삶과 죽음이 무시로 교차하는 전쟁에서 
운이 좋은 사람들은 살아나고,
운이 다한 사람들은 한 점 흙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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