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팔련오계(八蓮五桂 8형제).⑴. 김봉조(金奉祖) 15세 팔련오계(八蓮五桂 8형제) 팔련오계(八蓮五桂)라는 말은 팔련오계지미의 약칭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서 사마방을 연방, 문과방을 계방이라고도 하는데서 나온 말이며, 또 "팔사마 오대과"의 미칭이기도 하다. 14세 유연당공의 자제 팔형제분 모두가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분들 중 오형제분이 문과.. 원풍가첩(院豐家牒) 2011.06.03
김수현(金壽賢) 김수현(金壽賢) 公의 자는 정수(廷叟), 호는 둔곡(遁谷). 허백당공의 손자인 서촌공의 셋째로 태어났으며.1565(명종 20)∼1653(효종 4). 조선 광해군·인조 때의 문신. 1585년에 진사시에 합격하고.1602년(선조 35)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예조좌랑으로 ,시강원 문학직을 역임하고 다시 여조정랑이 되.. 원풍가첩(院豐家牒) 2011.06.03
유연당(悠然堂) 휘 대현(諱 大賢) 유연당(悠然堂) 휘 대현(諱 大賢) 자는 희지이고 호는 유연당이며 公은 화남공의 맡 자제로서. 선조15 임오(1582)년 생원시에 합격 문과에 올라 산음현감으로 있다가 중년에 고향 오미동에서 영주 봉향리로 이주한 후 선조 기축(1589)년 조금 서쪽으로 두 거북바위가 서로 가까이 보이는 곳에.. 원풍가첩(院豐家牒) 2011.06.03
김 농(金 農) 김 농(金 農) 13世 字 明甫 號 華南 (1534~1591)공은 잠암공의 독자로 태어났다. 부친 장암공은 을사사화(1545) 및 인종의 승하로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지난 날 인종 임금으로 부터 국사로 예우받은 은총에 보답하지 못하였음을 일평생의 애통으로 여기고, 오릉동을 오묘동으로 公의 이름을 農으.. 원풍가첩(院豐家牒) 2011.04.03
김의정(金義貞) 김의정(金義貞) 1495(연산군 1)∼1547(명종 2). 조선 중기의 문신. 公의 자는 공직(公直), 호는 잠암(潛庵) 또는 유경당(幽敬堂). 서울 장의동에서 허백당공의 맏 자제로 출생. 재기가 뛰어나 8세에 글을 지었으며, 약관에 이미 문장이 성취되었다. 1516년(중종 11)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526년(중종 21) 별시(別.. 원풍가첩(院豐家牒) 2011.04.03
우리가문의 선조,..록선청백리 허백당(虛白堂) 공 우리가문의 선조 가. 록선청백리 허백당(虛白堂) 공 정해 1467(세조 13)∼을미 1535(중종 30).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백기(伯起), 호는 허백당(虛白堂). 9대손인 진산군수공 휘 휘손(諱 徽孫.增吏曹參判)의 독자로 태어났다. 7세에 능히 문장을 지어 서거정(徐居正)에게 크게 칭찬을 받은 바 있다. 1489년(성종.. 원풍가첩(院豐家牒) 2011.04.03
회곡리(檜谷里).수리(壽里) 회곡리(檜谷里).수리(壽里) 세거 내력 14세 유연당 (휘 대현)공의 넷째 자제 심곡(深谷)공(휘 경조)은 인조14년 병자호란(1636)의 치욕을 통탄하며 니산(尼山)(지금의 논산)현감의 벼슬을 버리고 낙동강변 회곡리의 산수를 사랑하며 이곳으로 낙향하였다 공의 둘째자제 16세 통덕랑공 (諱 시윤)과 셋째자제 .. 원풍가첩(院豐家牒) 2011.04.03
오록(梧麓)리 오록(梧麓)리 ①.지명 유래 행정구역상: 경북 봉화군 물야면 오록1리 태백산 줄기 노봉산(갈방산)을 진산으로 천석산이 좌청룡, 만석산이 우백호 형상 을 이룬 데 자리한 봉화군 물야면 오록1리 창마[倉村]. 마을 우백호에 속한 봉황산. 상서로운 봉황은 오동나무에만 깃든다 해서 마을 이름을 오록(梧.. 원풍가첩(院豐家牒) 2011.04.03
사급리(벌방) 세거지명과 세거 유래 사급리(벌방) ①.지명유래 사급리는 행정구역상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사급(泗汲), 벌방리는 안 마을과 바깥 마을에 각각 40여 가구, 사급마을에 10여 가구 거주하고 있는 마을로 임란 전에 예천 임씨· 감천 문씨· 순흥 안씨들이 같은 무렵 터를 잡고 뒤이어 강릉유씨가 들.. 원풍가첩(院豐家牒) 2011.04.03
세거지명과 세거 유래.오미동(五美里) 세거지명과 세거 유래 가.오미동(五美里) ①지명의 유래 조선시대에는 안동부 풍산현에 속했다. 고종32년(1895)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안동군 풍산현에 편입 되었고 일제강점 직후인 193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풍산면에 편입되어 마을의 지형이 다섯 가닥의 산줄기가 뻗어 있어 오릉이라 부르다가 후에.. 원풍가첩(院豐家牒) 2011.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