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곡리(檜谷里).수리(壽里)
세거 내력
14세 유연당 (휘 대현)공의 넷째 자제 심곡(深谷)공(휘 경조)은 인조14년 병자호란(1636)의 치욕을 통탄하며 니산(尼山)(지금의 논산)현감의 벼슬을 버리고 낙동강변 회곡리의 산수를 사랑하며 이곳으로 낙향하였다
공의 둘째자제 16세 통덕랑공 (諱 시윤)과 셋째자제 증 시정공(贈 詩正公)諱 시중의 자손은 회곡리에 世居하며19세 전긍제(戰兢劑)(휘 서일.進仕,壽職,同知中樞府事) 公도 이곳에서 배출 하였으며 근세에 와서는 항일 순국열사인 죽포(竹圃)휘 순흠公도 이곳에서 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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