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풍가첩(院豐家牒)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신우림 2011. 4. 2. 16:30

 


1.族譜(족보)란?

  族譜(족보: 보통 보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한氏族(씨족)을 父系(부계)를 중심으로 체계적 몇 대에 걸쳐 그 휘(諱)와 업적, 관직 등을 기록해 놓은 책으로, 동일혈족(同一血族)의 뿌리를 알고 그 혈통을 존중하며 가통의 계승을 명예로 삼아 효의 근본을 이루기 위한 집안의 역사책이다.

  이에 따라 옛날부터 족보는 집안의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이를 대할 때는 상위에 모셔놓고 정한수를 떠서 절을 두번 한 후에 경건한 마음으로 살아계신 조상을 대하듯 하였으며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이처럼 소중하게 여겨온 족보가 해방 후의 서양화와 지금의 핵가족 제도가 되면서 봉건사상의 유물로만 생각하고 도외시하는 경향이 일고 있다. 그러나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에서, 또 지금도 '근본이 없는 사람' 으로 치부되었을 때 그 하나만으로도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조상들이 족보를 왜 그렇게 소중히 여겼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족보는“피의 기록이며 혈연의 역사”이다. 우리 조상들이 목숨을 바쳐가면서 지켜온 족보를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이어야 할 것이다.


 1).족보의 역사

  우리나라 족보는 세계에서 부러워 할 정도로 잘 발달된 족보로 정평이 나있으며, 계보학의 종주국으로 꼽힌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의 계보학 자료실에는 600여종에 13,000여권의 족보가 소장되어 있다.

  보첩은 원래 중국의 6조 시대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는 제왕연표

(帝王年表:왕실의 계통)를 기술한 것이었으며, 개인적으로 보첩을 갖게 된 것은 한나라 때 관직등용을 위한 현량과(賢良科)제도를 설치하여 응시생의 내력과 그 선대의 업적등을 기록한 것이 시초가 된다.

특히 북송의 대 문장가인 3소-소순, 소식, 소철에 의해서 편찬된 족보는 그 후 모든 족보편찬의 표본이 되어 왔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것으로 의종(毅宗)때 김관의(金寬毅)가 지은 "왕대종록(王代宗錄)"이 그 효시라 할 수 있다.

  또한 사대부의 집에서는 가승(家乘)이 전해 내려왔는데 체계적으로 족보의 형태를 갖춘 것은 조선 성종7년(成宗 1476)에 발간된 안동권씨 성화보(安東權氏 成化譜)이고, 지금과 같이 혈족전부를 망라한 족보는 조선 명종(明宗)때 편찬된 문화유씨보(文化柳氏譜)로 알려졌으며 지금까지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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