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농(金 農)
13世 字 明甫 號 華南 (1534~1591)공은 잠암공의 독자로 태어났다.
부친 장암공은 을사사화(1545) 및 인종의 승하로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지난 날 인종 임금으로 부터 국사로 예우받은 은총에 보답하지 못하였음을 일평생의 애통으로 여기고, 오릉동을 오묘동으로 公의 이름을 農으로 고쳐 주면서 농사를 짓고 살도록 하였다. 공은 그 후 나라로부터 薦(천)으로 소명이 5차례 있어도, 부친의 뜻을 그대로 지키느라 한번도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년에 이르러 집안이 간고하여 어쩔 수 없이 준원전 참봉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 후 여러 관직에 돌아 사헌부 감찰을 지내고, 예천 용궁현감을 거쳐 통례원인의 예빈시판관 장례원사의를 역임 하였다. 선조9 병자(1576)년 용궁현감으로 재임 시 자제(휘 대현)을 시켜 종택을 지금의 염감댁 터에서 현재의 자리로 중수 이건토록 하였다. 死後에 손자 참판공(휘 영조)의 榮貴로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겸 경영 참찬관으로 추증 되었다.
저서로 華南遺稿(화남유고)2권이 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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